그 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레스토랑에서 제일 친한 세나와 놀고 있던 클로에의 귀를 간질이고 떠났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클로에를 보며 세나는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저 소리? 가끔 들리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더라구.
나도 들리는데 프레이저씨는 안 들리는 모양이야. 후후.. 지금도 봐봐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서 있네."
클로에는 빨리 설명해 달라는 듯 세나의 앞치마를 살짝 잡아당기며 세나를 올려다보았다.
"응? 후후 궁금한 모양이네. 저건 세이렌의 피리 소리야.아주 가끔 들려오지만 이마저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적어서 마을의 헛소문에 들어가지만.. 클로에는 저 소리가 들린 모양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세나를 쳐다보자 다정한 손길이 머리 위로 내려왔다.
“궁금한 모양이네.. 세이렌은 그래, 델과 델렌이랑 비슷한 나이 때의 소녀래. 저쪽에 있는 던전에 나오는 모양이야. 그래도 혼자서 던전에 가는 무모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다. 저기엔 아주 무~서운 해골 몬스터가 나오니까 말이야.”
세나는 겁주려는 것처럼 양손을 위로 치켜들고 클로에를 덮쳐 안아 올렸다.
당황한 클로에는 손을 내저으며 내려달라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세나는 상관하지 않고 클로에를 들어 올린 상태로 빙글빙글 돌렸다. 내려 놓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꼬옥 품 속 깊이 안기고 나서야 클로에는 두 발을 땅에 디딜 수 있었다.
프레이저가 만들어준 애플파이를 먹고 돌아가던 길에 클로에는 평소에 지나지 않던 골목으로 눈길을 주었다. 분명 이쪽 길로 가면 아까 세나가 말해준 던전이 나온다. 이멘마하는 안전한 도시라 도시 내부에는 몬스터가 없었고 외곽에도 몬스터라고 해봐야 거미들뿐이었다.
아직 몬스터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클로에는 세나가 말한 해골 몬스터와 세이렌이 몹시도 궁금했다. 이 멋진 물의 도시의 유일한 단점은 도서관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도서관에 있는 어린이용 몬스터 도감을 보았다면 클로에는 이 밤, 발길을 던전으로 향하지 않았을 것이다.
.
.
클로에는 생각했다. 오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이 던전은 생각보다 넓고 복잡했다. 어린아이 혼자 돌아다니다가는 금방 길을 잃을 만큼. 단순히 피리소리를 낸다는 세이렌이란 존재와 해골 몬스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왔을 뿐인데 그것들은 안 보이고 일렁이는 횃불들 때문에 가만히 있는 돌 벽조차 생명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무서움에 두리번거려야 했고, 마치 물고기가 두 발로 서 있는 것 같이 생긴 이상한 몬스터에 쥐만 잔뜩 나와서 보고 싶던 몬스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매우 지친 상태였다. 몬스터들의 눈을 피해 몰래몰래 숨어 다니던 클로에는 복도 끝이 막혀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이럴 줄 알았으면 세나 말을 들을걸 그랬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던전 안에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생각보다 가까이, 크게 들린 그 소리에 클로에는 다시 일어나서 던전 깊은 곳으로 더더욱 나아갔다.
얼마나 더 헤맸을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고, 클로에는 마침내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지나오다 보니, 보였던 뼈만 남은 사람과 늑대가 세나가 말했던 해골 몬스터라는 것 같았다. 남은 건 그 피리를 부는 세이렌이란 몬스터만 몰래 보고 나오면 될 일이었다.
이제 이 문만 열면 된다고 생각하고 문에 손을 대려던 순간, 누군가가 뒷덜미를 낚아챘다.
“여기 있었군.”
덜렁 들어 올려진 클로에의 눈을 새하얀 백발이 가득 채웠다.
“어떻게 이 곳까지 온거지. 그래서 여태 못 찾았던건가...”
클로에를 들어 올린 채 그대로 깊은 고민에 빠진 회색 눈동자에 클로에는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래.. 그 세이렌이란 몬스터가 보고 싶다고? 그건 이 문 뒤에 있다. 사하긴들과 함께 말이지.”
클로에는 드디어 피리소리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문으로 달려가려 했다. 또다시 뒷덜미가 잡히기 전까지는
“꼬맹이. 사람이 얘기를 하면 끝까지 듣는 게 예의라고 안 배웠나 보지?”
처음 듣는 소리를 하는 사람을 쳐다보며 클로에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 사람은 뭔가 나랑 다른 사람 같다는 사람의 형태를 한 다른 존재인 거 같은 느낌.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은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해도 되는 말은 아니지만 클로에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들어 올린 눈 앞의 존재에게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사람? 아 다난을 말하는 건가? 맞아. 다난은 아니지. 다난들은 밀레시안을 무조건 알 수 있다더니 그런 느낌이 있었나 보군. 다난이 아니면 뭐냐니.. 방금 말했듯이 밀레시안이다. '수정화' 라고 한다.”
‘밀레시안’이라는 단어를 듣자 클로에의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이상하게 뛰는 자신의 심장에 손을 올려 진정시킨 뒤 클로에는 그 울림조차 어색한 ‘수정화’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보았다.
“그래. 그게 내 ‘이름’이다. 그런데 넌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이 곳은 통행증이 없으면 올 수 없는 던전인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몬스터는 잔뜩 봤겠지?”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많은 몬스터들을 전부 잡아야만 이 곳에 올 수 있는 거다. 정말로 몬스터들 눈을 피해서 온 게 확실한가?”
클로에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꼬맹이. 운이 좋은 편이군. 여기서 이거라도 하나 먹고 잠깐 여기서 쉬고 있도록 해라.”
품에서 노란색 약병을 꺼내 클로에에게 건넨 수정화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보도록 하지.”
클로에는 그제야 수정화의 뒤에 한 명 더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옷도 머리도 하얀 그와는 반대로 붉은 머리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옷을 입고 안대와 베일까지 쓴 그녀는 조용히 수정화의 뒤에 섰다.
“반드시 마시도록 해라. 몸의 피로가 좀 풀릴 거다. 그리고 정 세이렌이 보고 싶거든 보여줄 테니 부르면 그때 들어오도록 해라. 알았나?”
클로에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고 수정화가 거대한 문을 열자 그에 맞는 거대한 방 안에 몬스터들이 다수 등장했다.
“그럼 가지.” 수정화가 붉은 머리의 그녀를 쳐다보며 말하자 그녀는 안대를 썼음에도 시선이 느껴진 듯 살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은근히 자상하다니까. 그래서 좋은 거지만”
“웃기는 소리.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 말 듣고 펫 타고 제일 먼저 달려왔잖아. 아이던씨가 고맙게 생각할 거야.”
“어쩔 수 없지. 밀레시안은 다난을 위기에서 구해야만 하니까.”
“그래도 괜찮아. 그래서 반한 거니까.”
“얌전히 사냥이나 하지 않겠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가 103마리, 당신이 98마리야.”
“.......좀 더 분발하도록 하지.”
한 마디씩 주고받는 대화는 너무 평범해서 마치 두 사람이 던전이 아닌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대화 중간중간 들렸던 몬스터의 비명 소리를 제외하고는.
“꼬맹이. 정리가 끝났다. 들어올 텐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클로에는 빈 약병을 꼭 쥐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곳에는 여자 사람처럼 보이는 존재가 서 있었다.
“아 지금은 잠깐 자장가로 재웠어. 잠든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으니까 빨리 구경하는 편이 좋아.”
붉은 머리의 여자의 말을 들은 클로에는 최대한 많은 부분을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손에 들고 있던 피리, 얼굴 위의 가면, 파란색의 짧은 드레스, 푸른 장미까지.
“감상 다 했나? 느낌이 어떻지?”
수정화는 클로에에게 말을 걸며 자연스레 안아 들고 들어온 곳의 반대편 문으로 향했다. 세이렌을 좀 더 보고 싶어 하는 조그마한 머리를 눌러 품속에 가두며 수정화는 이 어린 다난이 무사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반대편 문에 도착한 수정화는 자연스레 몸을 돌려 클로에의 시선이 세이렌에게 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방어했다. 두어 번의 마법을 사용하는 소리가 들리자
드르륵-
하고 클로에 눈 앞의 문이 열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보상이 별로이군.”
“어차피 보상 좋았던 적 한 번도 없으면서..”
“혹시나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수정화는 세이렌을 잡기 전에 들어 올린 클로에를 보상 상자를 열 때조차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기사단에 갈 때까지 내려놓지 않았고, 단단한 품에 안긴 클로에는 슬며시 쏟아지는 잠에 눈을 깜빡이며 졸지 않으려고 애썼다.
“무사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밀레시안님. 이번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이 애가 무사했으니 다행입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던바튼으로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인사드립니다. 부디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수정화는 품에 안고 있던 클로에를 내려놓고 기사에게 인사하며 돌아섰다. 수정화와 붉은 머리의 여인이 멀어지자, 기사는 클로에의 귀환을 아이던에게 보고했다.
“클로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 그 위험한 던전에 간 것입니까? 세나가 자신 탓이라며 얼마나 울었는지 아십니까?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클로에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가버린 장소가 던전 일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많이 걱정했습니다.”
클로에는 자신 때문에 세나가 울었다는 말과 걱정했다는 아이던의 말에 미안한 감정이 북받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이던에게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듣고 레스토랑으로 향하던 클로에는 세나에게 꼭 사과하자고 결심하며 작은 걸음을 재촉했다.
저 멀리에서부터 세나의 앞치마 자락이 보이자 클로에는 점점 더 걸음을 빨리하여 세나의 품에 뛰어들었다.
“어머 깜짝이야. 세상에 클로에. 무사했군요.. 걱정했어요.”
클로에는 자상한 세나의 목소리에 또다시 눈물이 흘러나와 세나의 앞치마를 잡고 놔주지 않았다. 세나는 곤란하다고 하면서도 그 작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고, 스스로도 울먹이는 상태면서도 오히려 더 끌어안아주며 눈물이 흘러 축축해진 안경과 수염을 걱정해주었고, 프레이저와 고든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나의 품에서 훌쩍이고 있던 그 때, 클로에에게 다가오는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아미고. 무사했구나. 소식 들었어. 걱정했다구.. 싸우지도 못하면서 혼자 그런데 가지 마.”
뒤쪽에서 클로에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클로에를 걱정하듯 자상하게 말을 걸었다.
클로에는 자신의 행동이 사소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좋아하는 사람들을 걱정시키는 무모한 행동이라는 걸 깨닫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 세나의 품에서 모두에게 울면서 사과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클로에는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