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수정화는 쇼파에서 잠들곤 했다. 집에 들어오는 횟수조차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그날 이후인것 같다고 조얀은 생각했다.
오늘만큼은 벼르고 벼른 질문을 하겠노라며 조얀은 마음을 다잡았다.
무려 열흘만에 집에 들어온 수정화는 어딘지 모르게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조얀은 그것이 본인의 집이 아님에서 오는 불편함에 기인한 것인지, 혹은 자신때문인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이 집이 그렇게 불편해요? 그게 아니면 내가 불편한거에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수정화의 한쪽 눈썹이 올라가며 의문스런 눈길로 조얀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또다. 그는 항상 자신의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 점을 멋있다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연인이 된 지금은 소통의 방해물일 뿐이었다. 조얀은 그런 수정화가 답답하면서도 그러한 부분조차 사랑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조얀도 수정화와 지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진 않았기에 이럴 때의 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조얀은 수정화의 눈을 아무말 없이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그가 자신이 화났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피하는 것을 조얀은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정화는 조얀의 시선을 덤덤히 받는 척 하며 자연스레 조얀의 눈길을 피했다.
"화난.. 건가"
조얀의 손끝을 바라보며 수정화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화나지 않았어요. 전 정화씨가 저를 피하는 이유가 궁금한거지 화가 나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대답을 안해주시면 화가 좀 날지도 모르겠네요."
조얀이 단호한 어투로 말하자 수정화의 시선이 다시 그에게 꽂혔다.
"피하지 않았어. 다만 거리를.. 두고 싶었을 뿐이지."
"그게 피하는거랑 뭐가 다른데요. 전 드디어 정화씨와 함께 지내게 되서 얼마나 기뻤는데! 정화씨는 그러지 않은건가요"
"나도 함께 지내게 된 점은 기뻐. 그렇지만.."
"그렇지만 지내다보니 썩 좋지 않던가요? 정화씨가 저와 함께 사는게 불편하다면 제가 나갈게요. 제발 밖에서 지내면서 걱정끼치지 말아요. 그런건.. 더이상 하고싶지 않으니까.."
조얀이 입술을 깨물며 흐릿해진 눈동자로 수정화를 바라보며 말하자, 수정화는 당황한듯 다급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니, 아니야. 오히려 너무 좋았고,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이제까지의 삶에 없었어.. 다만..
다만 난 나를 주체하지 못해서 너에게 또 상처를 입힐까봐.. 그게 두려웠던거야..."
왼손을 들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정화는 한숨과 함께 자신의 심경을 말했다.
"처음이었어.. 다른 사람과 지내는 것도 다른 사람을 이렇게까지 애타게 갈구하는 것도.. 그리고... 함께 밤을 지내는 것도..."
조얀은 얼핏 보였던 그의 눈가가 붉어보인단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가 우는걸까...
그럴리가 란 생각을 하며 조얀은 말했다.
"그..그건 저도.. 처음이니까 어쩔 수 가 없었다구요. 거기다 정화씨..........는.. 좀.. 버겁달까... 그리고 아침까지 괴롭혔잖아요. 불가항력이었다구요."
말하다보니 이런 부끄러운 부분까지 말해야 하는건가 란 생각에 조얀의 얼굴은 점점 벌개졌다.
빨개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정화의 시선을 피한 찰나 그런 조얀의 뺨에 차가운 손이 와닿았다.
수정화는 조얀의 양 볼에 손을 올리며 시선을 마주한채 말했다.
"아파한게 아니었나?"
조얀은 이런 질문은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선을 피하지도 못하게 한채 저런 질문이라니.
"아..프지 않았어요.. 그냥.. 진짜로 좀 피곤했던거 뿐이니까.... 그니까 그게.."
횡설수설 하려던 찰나 정화의 눈이 점점 다가온다 싶더니 살짝 따뜻하면서도 말캉한 입술이 조얀의 입을 덮쳤다.
마치 오랜시간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이 물을 허겁지겁 들이키듯 정화는 조얀의 입술을 탐했다.
숨이 막혀올 때 쯤에 한번씩 숨쉴 틈을 주는 정화에게 호흡을 갈구하듯 매달리던 조얀이 겨우 그만이라는 말을 내뱉자 정화는 그제서야 키스를 멈추었다. 자신은 방금전의 키스로 아직도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분명 같이 키스한 정화는 너무 멀쩡해 보였다. 그 모습에 조얀이 어이없어 하던 순간 정화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조얀의 입술을 손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모자라... 더 하고싶어. 더 한걸 하고싶어.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있어. 지금도 힘들어하는 널 보면 자제 해야되는데 그게 주체가 안돼. 그래서 거리를 둔거야. .....이래도 괜찮겠어?"
남부끄러운말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내뱉는 그 모습에 조얀은 수정화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하고 말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니까 천천히 같이 맞춰 나가요. 나라고 그런 욕구가 없는것도 아니니까"
정화의 목을 껴안으며 조얀은 환하게 웃었다. 조얀의 미소를 본 정화는 자신은 욕구조절 하나 제대로 못해서 이 착한 사람을 또다시 상처 입혔었구나 하고 조얀을 마주 안으며 생각했다.
그러나 정화는 조얀의 눈이 다른 의미로 빛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 욕구가 없는건 아니지. 다만 한번에 감당할 수 있는 크기는 역시 다르지. 과연 다르다고 할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조얀은 역시 첫 날 좀 힘들어한 보람이 있긴 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처음부터 전부 받아주면 앞으로 정화의 체력을 감당 못할까봐 중간에 힘들어 했더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자신을 피할줄이야. 그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건 비밀로 해야겠다며 앞으로 천천히 정화를 자신에게 맞춰나갈 생각에 즐거워지는 조얀이었다.
그런 조얀의 생각을 모르는 정화는 자신의 품에 얌전히 안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번만은 자제하자며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